<영돈녕공파>와 <영사공파>
종친회 홈페이지에 들어올 때마다 신경이 쓰이는 용어가 바로 <영돈녕공파>입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돈녕부>를 검색합니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안내가 뜹니다.
"찾으시는 단어가 없나요? <우리말샘>에서 다시 한번 검색해 보세요."
<우리말샘>에서 <돈녕부>를 검색합니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안내가 뜹니다.
<령돈녕부사(領敦寧府事)>
로 인내되며 그 해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령돈녕부사 「001」 「명사」 「북한어」 『역사』 ‘영돈령부사’의 북한어.>
그래서 다시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돈령부>로 검색하면
그러면 다음과 같이 검색됩니다.
돈령-부(敦寧▽府)
발음 [돌령부]
「명사」
『역사』 조선 시대에, 왕실 친척들의 친목을 위한 사무를 맡아보던 관아. 태종 14년(1414)에 처음 설치하였다가 고종 31년(1894)에 종정부에 합쳤다.
<우리말샘>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돈령-부(敦寧▽府) [돌령부]
돈령-부 「001」 「명사」 『역사』 조선 시대에, 왕실 친척들의 친목을 위한 사무를 맡아보던 관아. 태종 14년(1414)에 처음 설치하였다가 고종 31년(1894)에 종정부에 합쳤다.
동-지돈령부사(同知敦寧▽府事) [동지돌령부사]
동-지돈령부사 「001」 「명사」 『역사』 조선 시대에, 돈령부에 속한 종이품 벼슬.
●영-돈령부사(領敦寧▽府事) [영돌령부사]
영-돈령부사 「001」 「명사」 『역사』 조선 시대에 둔 돈령부의 으뜸 벼슬. 품계는 정일품으로 국구에게 내리었다.
지-돈령부사(知敦寧▽府事) [지돌령부사]
지-돈령부사 「001」 「명사」 『역사』 조선 시대에, 돈령부에 속하여 왕실 친척의 일을 맡아보던 정이품 벼슬.
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 [판돌령부사]
판-돈령부사 「001」 「명사」 『역사』 조선 시대에 둔, 돈령부의 으뜸 벼슬. 품계는 종일품이다.
<돈령부>에서 으뜸벼슬은 무엇입니까?
<영사(領事)>입니다.
영사를 검색하면
영사9(領事)
발음 [영사] *장음 [영:사]가 아닌 단음 [영사]로 발음해야 합니다.
「명사」
「1」 『역사』 고려 시대에, 삼사(三司)·춘추관·경연(經筵)·전의시(典儀寺)·사복시·선공사 따위의 으뜸 벼슬. 정일품이나 정이품의 재신(宰臣)이 겸하였다.
「2」 『역사』 조선 시대에, 문하부·삼사·돈령부·경연·집현전·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중추부·돈령원 따위의 으뜸 벼슬. 영돈령부사 외에는 의정(議政) 또는 영의정이 겸하였다.
여기서는 2의 내용입니다.
1
派名은 주로 그 선조가 어떤 관직에 있었느냐로 관직이름을 씁니다.
여기서 우리 파조 어른은 돈령부에서 으뜸벼슬인 영돈령부사인 <領事> 자리에 오르셨기에 우리 자손들은 <영돈령부사공파>라고 불러야 정확한 명칭이 됩니다.
어떻습니까?
부르기에 어떻습니까?
부르기에 쉬웁니까?
이름은 부르기 쉽고, 뜻에 맞고, 글자 수가 적어야 좋습니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돈령부의 으뜸 벼슬인 <영사>로 하여 <公>을 붙인 <영사공파>로 1987년 영사공파 종중에서 합의를 보고 그렇게 정했습니다.
그러다가 또 영사공파 종중에서 옛명칭으로 돌아간다고 하면 다른 파에서 뭐라고 할까요? "長派에서는 왜 명칭을 이랬다 저랬다 할까?" 이런 말씀을 들을 수가 있지 않을까요?
과거의 명칭 <영돈녕공파>를 봅시다.
*바른 표기는 <영돈령공파>입니다.
<領>은 領事, <돈녕(敦寧)>은 <敦寧府>, <公>은 <남자 3인칭의 공대말>, <派>를 붙여 <영돈녕공파>로 불러왔었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글자 수가 많아서 경제적으로 글자 수를 줄여 <영>자를 생략하여 <돈령공파>라고 부르는 경우가 가끔 있었는데 그러면 벼슬 이름이 없기에 뜻에 맞지 않아서 <영사공파>로 부르면 글자 수도 줄고, 온전한 의미를 담을 수 있다고 하여 그리 정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최근의 대동보인 <88보>에서도 자손록에 <영사공파>로 표기하고 그렇게 불러왔습니다.
그렇게 부르면 "<영돈녕>이다, <영돈령>"이다 헷갈리지도 않습니다.
1987년부터 2026년까지 40년 가까운 39년까지 호칭하다가 다시 불합리한 과거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볼 일입니다.
그 당시에도 상층부 지도자 몇 사람이 그렇게 정한 게 아니고 의견을 수렴하여 민주적으로 결정했었습니다.
*굳이 옛 명칭을 고수해야 한다면 국어사전대로 <영돈령[영:돌령]>으로 해야 합니다.
과거, 어른들이 합리적으로 합의하여 결정하셨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당시의 김녕종보 부분을 아래에 옮기고 원본을 붙임자료로 올립니다.
*글번호 895번 참조바랍니다.
2026년 8월 2일
영사공파 29세손 국빈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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領敦寧公派를 「領事公派」로 呼稱
(1987. 4 金寧宗報 揭載)
金寧金氏는 汎新羅金氏로서 敬順大王의 第四子 諱殷說 大安君의 七世孫인 諱時興 諡文烈公은 高麗 仁宗때 金寧君(金州君)을 封君받은 金寧金氏의 貫祖이다.
그후 근 천년의 근본을 갖고 그 후손이 전국각지에 1백만명 가까이 흩어져 살고 있는 大氏族으로서 領事公派를 비롯하여 忠貞公派, 忠毅派등 크고 작은 계파가 31개로 분파되어 있는 바 그중 長派(宗派)의 派祖가 朝鮮朝 端宗때 敦寧府領事(正一品)를 역임하신 諱遵 號晩池堂이다.
옛부터 派祖의 관직명을 따라 領事公派 또는 領敦寧公派라고 호칭하여 왔었던 바 금번 發刊되는 大同譜부터는 領事公派라고 호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宗中의 重鎭會議에서 결의가 되었기에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선 敦寧府領事라는 관청에 대한 직무와 역사적인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1) 敦寧의 意味
조선왕조 초기에 왕실의 친척, 즉 왕의 동성은 9촌이내, 異姓은 6촌이내, 왕비와 동성은 8촌이내, 이성은 5촌이내, 세자빈의 동성은 6촌이내, 이성은 3촌이내의 사람들을 가리켜 「敦寧」이라 하였다.
2) 敦寧府에 대하여
조선왕조 초기부터 말기 가까이까지 있었던 직제로서 왕실내의 가까운 친척, 즉 위의 「敦寧」의 친밀을 도모하기 위한 사무를 관장하던 官廳으로서 그 이름을 「敦寧府」라고 하였으며 그에 속하였던 관직은 그 수장이 領事(正一品)이고 그 다음부터 判事(從一品), 知事(正二品), 同知事(從二品), 都正(正三品), 副正(從三品), 僉正(正四品), 判官(從五品), 主簿(從六品), 直長(從七品), 奉事(從八品), 參奉(從九品)의 관원을 두고 있었다.
3) 領事라는 관직은 정1품으로서 품계는 大匡輔國崇祿大夫로서 조선조에서는 가장 높은 벼슬인 正一品級이다.
4) 領事를 두었던 관청은 敦寧府 春秋館 藝文館 弘文館 經筵 廳 中樞府등이다.
5) 金寧金氏의 領事公後孫을 領事公派 또는 領敦寧公派라고 호칭하던 이유는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派祖의 관직명을 따라 領事公派 또는 領敦寧公派라고 호칭하여 왔다.
6) 領敦寧公派라는 의미에 대하여 領敦寧이라는 어원은 敦寧府領事의 略稱이다. 바꾸어 말하면 敦寧府의 領事라는 다섯글자를 略하여 領字를 위에 붙여 領敦寧 또는 領敦寧府事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이번에 領事公派로 부르자고 제의하고 결의한 것은 領事公派라고 호칭하게 되면 관직명 그대로 부르기 때문에 착오나 오발할 염려가 없으며 국사를 알면 당장 이해하기 쉽다. 이와 반대로 領敦寧公派로 호칭하고 보니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
첫째 五字로 되어 있어 부르기가 어렵다.
둘째 五字를 부르기 어렵다고 하여 그 의미도 모르고 領字를 빼고 「敦寧公派」라고 부르는 사람이 간혹 있으나 이는 전혀 뜻이 없고 사리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선조에 대한 累가 된다.
셋째 관직명에 領敦寧이라는 직명이 없으므로 이해하기 어렵다.
넷째 錯誤나 敦寧公派라고 오발하기 쉽다.
다섯째 領敦寧府事라고 하면 끝에 府事가 있어 지방관직인 正三品의 부사와 착각하거나 혼동하기 쉽다.
이와 같이 領敦寧公派라고 呼稱하다 보면 여러 가지 언행에 착오가 생길 염려도 있고 실제 領字를 빼고 敦寧公派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기에 부르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국가의 관직명 그대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여 금후부터는 領事公派라고 호칭하기로 領事公派 宗中에서 결의한 것이다.
全國宗親會 副會長
法務士 金 炳 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