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청도의 호방 마을은 30여 호의 작은 산촌이고, 수백 년 전부터 고성이씨(固城李氏) 참판공파(參判公派) 후손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김해에서 자랐는데, 내가 자란 마을도 10여 호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고, 김녕김씨(金寧金氏) 집성촌이었다. 김해에서는 비교적 대성인 김녕김가가 청도의 우리 마을에서는 타성바지 희성이 되어버렸다.
다행히도 이곳 인심이 좋은 편이라 타향살이의 어려움은 없이 잘살고 있으나 고성이씨 마을에서 살다 보니 가끔 내 본을 잊어버릴 때가 있어 육신으로 난 혈육의 뿌리를 찿아 지난 이야기를 내 아들에게 다시 전하려 한다.
나는 김녕김가(金寧金哥)이고, 충의공파(忠毅公派) 27세손으로 율리(栗里)문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영(永)자 규(圭)자를 쓰셨는데 규자가 항렬이고 나는 진(鎭)자가, 내 아들은 연(淵)자가 항렬이다. 그리고 손녀는 정(楨)자가 항렬인데 딸아이기도 하지만 제 아비가 유은교회(唯恩敎會)에서 차용한 유은(唯恩)으로 한다기에 좋은 이름이라 여겨져 허락했다.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셔서 기억이 나지 않고, 할머니는 비교적 장수하셨는데 명절 때는 어린 내 형제를 무릎에 앉히시고 마치 교회에서 성경공부나 교리문답 할 때처럼 문답(問答)하시기를 좋아하셨다.
문 : 성(姓)은 무엇인고?
답 : 김가입니다.
문 : 본(本)은?
답 : 김해(金海)김가...아니, 김녕(金寧)김가입니다.
문 : 옳지, 김해 땅의 옛 이름이 김녕이였는데, 옛날 족보는 김해김가로 되어 있으나, 지금의 김해김씨와 구별하기 위해서 김녕김가로 했지. 김해김씨는 수로왕(首露王)이 시조이지만, 우리는 김알지(金閼智) 님이 시조이시고,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후손이란다. 그러면 파(派)는?
답 : 충의공(忠毅公)파입니다. 왜 충의공파예요?
여기서부터는 문답자가 서로 바뀐다.
답 : 그래 충의공파지, 충의공은 백촌 김문기(白村 金文起) 선조 님의 시호(諡號)란다. 백촌 선조는 조선 세조(世祖) 때 단종(端宗) 임금 복위(復位)를 꾀하시다가 참형을 당하셨지... 말하자면 사육신(死六臣)에 속하는 분이란다. 온 가족이 멸살(滅殺) 당할 때 주인의 은혜를 입은 종복(從僕) 중 한 사람이 갓 난 남자아이를 자기 아들이라고 속여 길러왔지... 너희들은 그 핏줄을 이어받았단다. 그리고 그 후손 중의 한분이 웅천(熊川)에 살다가 여기까지 와서 율리(栗里)문중을 이루었단다.
문 : 왜 율리문중이라고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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